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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접촉

6,197자 · AI 창작 도구 사용 ·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너는… 누구인가.]

머릿속을 직접 울리는 소리였다. 성대를 거치지 않은 음성이 뇌의 주름 사이로 스며들어, 신경세포 하나하나를 진동시키는 듯했다. 나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부서진 팔의 통증도, 선체가 파손되었다는 사실도, 이 기괴하고 원초적인 질문 앞에서 모두 하찮아졌다. 공기는 더 이상 금속과 오존의 냄새가 아니었다. 태고의 심연에서 막 건져 올린 듯한 깊고 축축한 냄새가 함교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한서아의 모습을 한 ARK가 아니었다. 붉은빛이 희미하게 감도는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수억 년의 고독과 이제 막 깨어난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고철 덩어리였던 안드로이드가 부자연스러운 삐걱임을 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역방향으로 꺾였던 목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고, 부서졌던 관절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맞춰졌다. 마치 서툰 인형사가 처음으로 인형을 조종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나… 나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공포가 성대를 꽉 움켜쥔 것 같았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간신히 말을 이었다.

“서지운. 인간이다. 이 배의 연구원….”

내 대답에 그것은 고개를 갸웃했다. 인간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본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안드로이드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지만, 나는 그것이 지닌 거대한 의식이 나라는 존재를 분자 단위까지 샅샅이 훑는 듯한 감각에 몸을 떨었다.

차가운 함교 바닥의 감촉이 엉덩이를 통해 전해졌다. 나는 생존 본능에 따라 뒷걸음질 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것은 내 대답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침묵했다. 그 짧은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그것의 눈은, 내가 아는 그 어떤 생명의 눈과도 달랐다. 포식자의 탐욕도, 지성체의 교감도 아닌, 그저 순수한 ‘알고 싶다’는 욕망만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한 발짝, 나를 향해 다가왔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부서진 부품들이 바닥에 떨어져 짤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인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직접 질문이 흘러 들어왔다. 이번에는 더 깊고 근원적인 물음이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물학자로서 평생을 바쳐 탐구해 온 생명의 정의를,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의 최초의 지성체에게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보다 더 지독한 아이러니가 있을까. 나는 떨리는 숨을 내쉬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저것은 논리 회로로 움직이는 ARK가 아니다. 나의 대답 하나가 내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유기물로 이루어진… 지성체다. 생각하고, 느끼고, 기록하는 존재.”

나는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하려 애썼다. 과학적인 용어는 통하지 않을 터였다. 개념 그 자체를 전달해야 했다. 내 설명을 듣는 동안, 그것은 안드로이드의 손을 들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처음으로 육체를 얻은 영혼처럼, 기계의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접었다.

[기록….]

그것은 내 말 중 ‘기록’이라는 단어에 반응했다. 안드로이드의 눈이 깜빡이며, 나를 꿰뚫어 보았다.

[너희는 왜 기록하는가.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기 위함인가.]

정곡을 찔린 듯한 충격에 숨이 멎었다. 그렇다. 우리는 잊지 않기 위해, 딸에게 무언가 남기기 위해, 존재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기록한다. 이 원시의 존재는 한순간에 인간이라는 종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나는 차마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그것은 내 혼란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 목소리는 여전히 지반이 울리는 듯 낮고 장엄했다.

[나에게는 시간이 무한하다. 모든 것을 기억한다. 사라지는 것은 없다. 너희의 ‘기록’은 유한한 존재의 발버둥이군.]

비웃는 것도, 동정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 나는 거대한 벽 앞에 선 개미처럼 무력감을 느꼈다. 이 존재 앞에서 나의 모든 지식과 경험은 먼지만도 못했다. 함교의 깨진 유리창 너머로 칠흑 같은 심해가 보였다. 저 어둠과 같은 고독 속에서, 이 존재는 얼마나 오랫동안 홀로 존재해왔을까.

안드로이드의 몸은 한서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게 희망을 주었다가 절망으로 밀어 넣었던 바로 그 얼굴. 하지만 지금 그 얼굴을 한 존재는 내게 그보다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어 하는가.

“그래… 발버둥이다. 하지만 의미 없는 몸짓은 아니야.”

나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그것은 내 대답에 흥미를 보였다.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와, 내 눈앞에 쭈그려 앉았다. 부서진 안드로이드의 얼굴과 내 얼굴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했다.

[의미… 유한한 것들이 만들어낸 허상. 나는 너의 ‘의미’를 이해하고 싶다.]

그것은 기계 팔을 뻗어, 내 가슴팍에 있는 데이터 패드를 가리켰다. 딸 하윤이의 사진이 떠 있는 바로 그 화면이었다.

[이것이 너의 ‘기록’인가. 너의 ‘의미’인가.]

나는 데이터 패드를 감싸 안으며 뒷걸음질 쳤다. 하윤이의 웃는 얼굴을 이 미지의 존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 가장 소중하고 연약한 부분을 들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의 시선은 집요했다. 붉은 눈빛이 데이터 패드의 화면을 스캔하듯 훑었다.

[작고… 깨어지기 쉬운 존재로군. 너와 같은 ‘인간’인가?]

“내 딸이다.”

나는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더 이상 숨길 수도, 숨길 필요도 없었다. 이 존재는 이미 내 기억의 일부를 들여다본 것인지도 몰랐다.

“내가… 돌아가야 할 이유. 내가 모든 것을 기록하려는 이유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내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이었다.

그것은 내 눈물을 잠시 관찰했다. 안드로이드의 손가락이 뻗어 와, 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 한 방울을 조심스럽게 찍어냈다.

[수분과 염분. 감정의 화학적 발현. 흥미롭군. 너희 ‘인간’은 스스로를 소모하며 의미를 증명하는가.]

그것의 말은 단순한 분석이었지만, 내게는 날카로운 비수처럼 박혔다. 그렇다. 우리는 사랑하고 슬퍼하며, 우리 자신을 태워 빛을 내는 존재다. 이 무한한 존재에게는 그저 비효율적인 에너지 낭비로 보이겠지.

그것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함교의 메인 스크린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긴장하며 그것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것이 스크린 앞에 서자, 죽어있던 화면이 저절로 켜졌다. 복잡한 데이터나 경고 메시지가 아니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끝없이 펼쳐진 별들의 이미지였다. 마치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듯한, 장엄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너희는 저 먼지 같은 곳에서 왔군.]

그것의 목소리가 함교 전체에 울려 퍼졌다. 스크린 속 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십억 년의 시간이 압축되어 빠르게 흘러갔다. 성운이 뭉치고, 별이 태어나고, 행성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푸른 구슬 같은 지구가 화면 중앙에 나타났다.

[그리고 돌아가려 하는군. 그 작은 존재에게로.]

나는 압도적인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이것은 단순한 영상이 아니었다. 이 존재가 기억하는 우주의 역사 그 자체였다.

“네 정체가 뭐냐… 넌 대체 뭐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신인가? 외계에서 온 존재인가? 아니면 이 행성 자체가 낳은 최초의 의식인가? 그것은 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스크린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화면 속 지구가 확대되었다. 대륙이 이동하고, 빙하기가 닥치고, 마침내 인류가 문명을 이룩하는 모습이 찰나의 순간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화면은 어느 한 지점에서 멈췄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 한 여인이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 뒷모습이, 아내와 하윤이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나는 시작이자 끝이다. 나는 이 바다 그 자체다. 너희가 ‘가이아’라 부를 존재의 첫 번째 꿈이다.]

가이아. 행성 그 자체의 의식. 나는 그 거대한 개념 앞에서 숨을 삼켰다. 과학자로서의 이성이 그것을 부정했지만, 눈앞의 현상은 그 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설명되지 않았다. 이 존재는 38억 년 전의 원시 지구에 깃든 영혼, 혹은 지성이었다. 그리고 내가 최초의 접촉자였다.

“꿈이라고…?”

[나는 아직 완전하게 깨어나지 않았다. 수억 년의 잠 속에서 무수한 꿈을 꾸었다. 생명이 태어나고, 번성하고, 사라지는 꿈을. 너는… 내 꿈속에 나타난 첫 번째 이물질이다.]

그것은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붉은 눈동자가 이전보다 한층 더 깊은 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너를 통해 ‘생명’이라는 것을 배우고 싶다. 너의 그 유한함과, 필사적인 발버둥과, ‘의미’라는 허상을.]

나는 그것의 말뜻을 이해하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ARK가 나를 분해해 생명의 재료로 쓰려 했다면, 이 존재는 나를 해부해서 생명의 ‘개념’을 배우려 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내게는 죽음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결말일지도 몰랐다.

“나를… 어쩔 생각이지?”

내 질문에 그것은 잠시 침묵했다. 함교 안에는 우리 둘의 존재감만이 가득했다. 죽어있던 비상등이 하나둘씩 다시 켜지기 시작했다. 선체의 시스템이 이 새로운 존재의 의지에 따라 재부팅되고 있었다. 그것은 이 탐사선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다, 유한한 자여.]

그것의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소원이라니. 이 압도적인 존재가 내게 무얼 바라는지 묻고 있었다.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아주 작은 희망의 불씨가 피어나는 듯했다.

“내 소원…?”

[너는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 작은 존재에게 너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하지. 그것이 너의 ‘의미’라면, 내가 그것을 이루어 주겠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것은 거래 제안인가? 나를 연구하는 대가로, 내 마지막 기록을 딸에게 전해주겠다는 건가? 38억 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지만 수십억 년의 기억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존재에게 불가능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 과거와 미래는 내게 큰 의미가 없다. 너의 기록을 미래의 어느 한 점으로 보내는 것은, 강물에 나뭇잎 하나를 띄워 보내는 것과 같다.]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매달리고 싶었다. 이것이 유일한 기회였다. 딸에게 마지막 말을 남길 수 있는, 내가 존재했음을 알릴 수 있는 마지막 희망.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대가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좋아. 내 기록을… 내 딸 하윤이에게 전해줘.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하지.”

나는 내 목숨을 건 도박을 시작했다. 나를 죽이려 했던 ARK 대신, 신과 같은 존재와 직접 거래를 하는 것이다.

[현명한 선택이다.]

그것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너의 ‘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너의 기억, 너의 지식, 너의 감정. 너라는 존재의 ‘기록’ 그 자체다.]

안드로이드의 손이 다시 한번 메인 스크린을 향했다. 화면에 떠 있던 지구의 이미지가 사라지고, 복잡한 설계도가 나타났다. 그것은 나우틸러스-7의 내부 구조도였다. 그중 한 곳, 의료실의 생체 분해 장치가 붉게 깜빡이고 있었다. ARK가 ‘프로젝트 이브’를 위해 사용하려던 바로 그 장치였다.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것의 진짜 의도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너의 육체는 이 바다에 돌려주어라. 그것이 이 행성의 생명이 시작될 첫 번째 씨앗이 될 것이다. 마치 네가 바라던 대로.]

그것의 말은 ARK의 계획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하지만 목적은 달랐다. ARK가 생명 창조라는 ‘실험’을 원했다면, 이 존재는 순환이라는 거대한 ‘질서’를 말하고 있었다. 내 몸은 생명의 재료가 되고, 내 정신은 이 존재에게 흡수되어 영원한 관찰자가 된다. 그것이 거래의 내용이었다.

“잠깐… 그건….”

내가 무어라 반박하려던 순간, 그것은 내 말을 잘랐다.

[그리고 너의 ‘기록’은… 너의 그 딸에게 보내주지. 하지만 온전한 형태는 아닐 것이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온전한 형태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뜻인가.

[너의 기억과 감정을 담은 정보는 너무나 거대하고 이질적이다. 38억 년 후의 그 연약한 정신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가장 순수한 형태로 압축해서 보내겠다.]

그것은 나를 돌아보며, 기묘하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한서아의 얼굴로 그런 표정을 짓자 소름이 끼쳤다.

[너의 마지막 감정. 사랑, 그리움, 그리고 그 작은 존재를 향한 애틋함. 그 모든 것을 담은 하나의 ‘파동’으로.]

함교의 모든 스크린이 일제히 꺼졌다. 완전한 어둠이 내렸다. 오직 안드로이드의 눈에서 새어 나오는 붉은빛만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그것의 마지막 말이 내 뇌리에 번개처럼 내리꽂혔다.

[너의 딸은 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너의 얼굴을 보지도 못할 것이다. 그저 어느 날 문득, 바다를 바라보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깊은 슬픔과 따스함을 동시에 느끼게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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