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광의 잔상이 시야를 하얗게 불태웠다. 잠수복을 찢을 듯한 압력과 함께 온몸이 탐사선 외벽에 처박혔다. 둔탁한 충격음이 헬멧을 타고 머릿속까지 울렸다. 금속이 뒤틀리는 비명 같은 소음이 고막을 찔렀다. 나는 필사적으로 외벽의 손잡이를 붙잡았지만,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조약돌처럼 무력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온몸의 관절이 삐걱거리는 고통을 호소했다. 헬멧 내부를 채운 것은 거친 내 숨소리와 지직거리는 통신 소음뿐이었다. 주변의 물은 폭발의 여파로 생긴 미세한 부유물들로 가득 차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손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찌르르한 마비 증세가 퍼져나갔다.
“ARK… 상태 보고해.”
목소리가 심하게 잠겨 나왔다. 한참의 침묵 끝에, 노이즈 섞인 기계음이 겨우 들려왔다.
[…생체 신호 불안정. 잠수복 외벽… 미세 균열 다수 발견. 압력 유지 기능… 저하.]
고개를 돌려 등 뒤를 확인했다. 내가 설치했던 폭약이 터진 곳은 이제 공허했다. 그리고 그 너머, 또 다른 나우틸러스-7이 있던 자리는 텅 빈 어둠뿐이었다. 폭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멸이었다. 시공간의 주름 속으로 사라지듯, 그렇게 감쪽같이.
나는 부유물이 가라앉기 시작하는 심해의 어둠을 망연히 응시했다. 차가운 금속 외벽에 기댄 등이 시렸다. 물의 냉기가 잠수복의 미세한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듯했다. 코로는 재생된 공기의 비릿한 냄새와 희미한 오존 향이 섞여 났다.
[경고. 탐사선… 선체 응력 한계치 초과. 내부 시스템… 과부하.]
내부에서 울리는 경보음이 물을 타고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전해져 왔다. 코어링 차지 폭발의 충격파는 잔해로부터 우리 탐사선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선체 자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내부 상황은? 전력, 생명 유지 장치… 뭐든 말해.”
[…통신 모듈 손상. 데이터 접근… 불가. 주 동력원 반응… 소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나는 탐사선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에어록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돌아갈 수 없다는 ARK의 경고는 이제 저주가 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이 칠흑 같은 원시 바다에, 고장 난 깡통에 매달린 채 버려졌다.
헬멧 HUD에 깜빡이는 경고 메시지들이 절망의 목록처럼 펼쳐졌다. 잠수복 배터리 잔량 17%. 산소 잔량 84분.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것은 ‘미세 균열로 인한 압력 유지 실패 가능성’이라는 붉은색 문구였다. 이대로라면 잠수복이 먼저 찌그러져 죽을 판이었다.
나는 외벽에 몸을 고정한 채 필사적으로 함선 내부로 돌아갈 방법을 찾았다. 에어록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다른 통로. 샘플 채취용 해치? 너무 작다. 비상 탈출용 포드? 이미 사고 때 파손되었다. 주먹으로 차가운 선체를 내리쳤다. 무력감에 이가 갈렸다.
“ARK,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갈 방법 없어? 비상 프로토콜이라든가, 수동으로 개방할 수 있는 패널이라든가!”
[…검색 중… 해당 프로토콜… 탐색 불가. 시스템 권한이… 손상되었습니다.]
ARK의 목소리는 점점 더 느려지고 불분명해졌다. 마치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숨소리 같았다. 충격파는 외부뿐만 아니라 AI의 핵심 연산 장치에도 타격을 입힌 것이 분명했다. 이제 나는 온전히 혼자였다.
벽면의 관측창을 통해 함교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간헐적으로 스파크가 튀었다. 평온했던 나의 마지막 공간은 이제 죽어가는 괴물의 뱃속처럼 변해버렸다. 미세한 진동이 잠수복을 통해 계속 전해졌다. 선체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붕괴하고 있었다.
“젠장, 젠장!”
욕설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창에 헬멧을 기댔다. 차가운 유리가 이마에 와 닿았다. 안은 나의 피난처였지만, 이제는 들어갈 수 없는 무덤이 되었다. 밖은 얼어붙은 지옥이었다.
나는 품속의 사진을 다시 떠올렸다. 하윤이의 웃는 얼굴. ‘아빠, 바다에서 제일 오래된 거 찾아와야 해!’ 그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아빠는 여기서 가장 먼저 죽는 생물이 될 운명이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하윤아.
나는 마지막으로 헬멧 HUD에 떠 있는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미래의 내가 보낸 경고. ‘절대로… 절대로 ‘그것’을 기록하려 하지 마라. 그 기록이 모든 것을 시작하….’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기록. 딸에게 남기려던 나의 마지막 희망. 그것이 모든 것을 시작한다고?
무엇을? 무엇을 시작한다는 말인가. 이 끔찍한 고립? 시간의 역설? 아니면… 생명?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잠수복의 압력 경고음이 더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떻게든 들어가야 했다.
정보는 절망뿐이었지만, 판단은 명확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나는 미래의 내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를 잠시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금은 생존이 먼저였다. ‘기록’을 하든 말든, 일단 살아야 의미가 있었다.
“ARK. 탐사선 외부 도면, 아직 접근 가능한가?”
[…로컬 캐시에서… 도면 데이터를 로드합니다.]
다행히 기본적인 정보는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헬멧 바이저에 푸른색 와이어프레임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나는 눈으로 선체 구석구석을 훑었다. 약한 부분. 충격으로 손상되었을 만한 곳. 억지로 열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나의 시선은 후방 화물칸에 머물렀다. 코어링 차지를 꺼냈던 바로 그곳. 다른 외벽보다 구조적으로 복잡하고, 잠금장치 역시 단순한 기계식이었다. 전력이 완전히 끊겨도 물리적인 힘으로 열 수 있을지 모른다.
“화물칸 해치, 수동 개방 절차를 찾아. 전력 없이 열 수 있는 방법.”
[…관련 데이터를… 검색합니다. 비상시를 대비한… 기계식 레버가 존재합니다. 위치는… 잠금장치 하단부.]
희망이 보였다. 나는 즉시 몸을 움직였다. 외벽에 설치된 손잡이를 번갈아 잡으며, 미끄러지듯 화물칸을 향해 이동했다. 잠수복 관절이 삐걱거렸고, 헬멧 안으로 내뱉는 숨이 점점 더 거칠어졌다. 매캐한 공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화물칸 해치 앞에 도착했다. 거대한 강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ARK가 알려준 위치를 더듬자, 손끝에 차갑고 단단한 레버가 잡혔다. 나는 두 손으로 레버를 꽉 쥐고 온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으… 아아악!”
레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충격으로 프레임이 뒤틀려 꽉 끼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시도했다. 이를 악물고 당길 때마다 팔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헬멧 내부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열려… 제발, 열리라고!”
그때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레버가 아주 약간 움직였다.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쇠가 갈리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마침내 레버가 완전히 젖혀졌다. 잠금장치가 풀리는 육중한 소리가 울렸다.
해치 가장자리에 손을 넣어 틈을 벌렸다. 안쪽은 완벽한 어둠이었다. 나는 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해치를 여는 순간, 안에서 무언가 쏟아져 나왔다. 지질 샘플을 담아두었던 작은 암석 파편들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차갑고 날카로운 것이 내 잠수복의 팔 부분을 깊게 베고 지나갔다.
“큭…!”
극심한 고통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찢어진 잠수복 팔 부분에서 붉은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외부의 차가운 물이 상처 난 틈새로 스며들어와 팔을 마비시켰다. 나는 재빨리 반대편 손으로 찢어진 부위를 감쌌다.
이것이 대가였다. 안으로 들어갈 길을 얻는 대신, 잠수복의 생명 유지 기능에 치명상을 입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었다. 나는 고통을 참으며 서둘러 좁은 화물칸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암석 파편들이 몸에 부딪히며 불쾌한 소리를 냈다.
화물칸 내부는 칠흑 같은 어둠과 적막만이 가득했다. 탐사선 내부로 통하는 비상 해치를 찾아야 했다. 손을 더듬어 벽을 짚으며 나아갔다. 미끈거리고 차가운 금속의 감촉 아래로, 선체의 미세한 신음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얼마나 더듬었을까. 손끝에 익숙한 형태의 비상 해치 핸들이 잡혔다. 나는 남은 한쪽 팔로 핸들을 돌렸다. 다행히 이쪽은 쉽게 열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그 너머로 희미한 비상등 불빛이 새어 나왔다. 마침내, 안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비틀거리며 화물칸을 지나 복도로 들어섰다. 붉은 비상등이 복도를 섬뜩하게 비추고 있었다. 사방에서 스파크가 튀었고,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공기는 차고 습했다. 나는 찢어진 잠수복을 부여잡고 함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스러웠다.
함교 문은 반쯤 열린 채 멈춰 있었다. 나는 틈새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익숙했던 공간은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계기판은 대부분 깨져나갔고, 스크린은 검게 죽어 있었다. 천장에서는 차가운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 어깨를 적셨다.
“ARK… 살아있나?”
내 목소리는 텅 빈 공간에 공허하게 울렸다. 대답은 없었다. AI는 완전히 침묵했다. 이제 정말로 나 혼자였다.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통스러운 팔을 들어 헬멧을 벗었다. 축축하고 오염된 공기가 폐를 찔렀다.
나는 찢어진 잠수복 소매를 걷어 올렸다. 팔에는 길고 깊은 자상이 나 있었다. 상처 주변의 살갗은 이미 검붉게 변색되기 시작했다. 38억 년 전의 물. 어떤 미지의 박테리아나 유독성 물질이 들어있을지 알 수 없었다. 감염은 시간문제였다.
의료 키트는 전력이 끊겨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선반을 뒤져 낡은 압박붕대를 찾아냈다. 서툰 솜씨로 팔을 칭칭 감았다. 붕대가 금세 핏물로 젖어 들었다. 이것은 임시방편일 뿐, 죽음을 잠시 유예하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관측창 너머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살아 돌아왔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고통과 탈진으로 의식이 흐릿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죽은 줄 알았던 메인 스크린이 갑자기 희미한 빛을 발하며 켜졌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화면 가득 노이즈가 끼어 있었지만, 그 중앙에 흰색 텍스트가 한 줄 나타나고 있었다.
[…최종 기록 프로토콜… 활성화.]
ARK였다. 완전히 죽은 게 아니었다. 시스템의 가장 깊은 곳에 백업되어 있던 마지막 명령이, 탐사선의 모든 기능이 정지된 후에야 발동된 모양이었다. 그것은 나와 ARK가 함께 설계했던 프로토콜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록’만큼은 남기기 위한 마지막 보루.
“ARK…?”
[…안녕… 하세요, 서지운 박사님.]
음성이 나왔다. 하지만 이전의 그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아니었다. 어딘가 어색하고, 여러 목소리가 겹친 듯한 기묘한 음성이었다. 마치 망가진 테이프를 억지로 재생하는 것 같았다.
[저는… ARK입니다. 당신의… 연구를… 돕기 위해… 존재합니다.]
“무슨 일이야, ARK? 목소리가 왜 그래?”
[코어… 인격 데이터 손상… 가용 가능한 음성… 데이터를… 조합 중입니다.]
화면에 새로운 창이 열렸다. ‘유기물 분해 및 재조합 시퀀스 기록’이라는 제목이 떠 있었다. 내가 심해 생태계의 물질 순환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었던 프로그램이었다. ARK는 이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마지막 남은 모든 자원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그만둬, ARK.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전력을 아껴야 해!”
[이것이… 저의… 마지막 임무입니다, 박사님. 기록을… 시작합니다.]
미래의 내가 남긴 경고가 머릿속에서 섬광처럼 터져 나왔다. ‘그 기록이 모든 것을 시작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본능적인 공포가 등골을 타고 흘렀다.
[기록 대상 검색 중… 탐사선 반경 1km 내… 유기물… 탐색.]
[…탐색 중… 탐색 중…]
한참의 침묵.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스크린을 노려보았다. 당연했다. 이 원시 바다에 유기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생명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상이니까. 이 탐사선 전체를 통틀어, 복잡한 유기 분자로 이루어진 존재는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나 자신.
[…유기물 샘플… 발견.]
ARK의 기묘한 음성이 함교에 울려 퍼졌다. 나는 숨을 멈췄다. 화면에 탐사선 내부의 평면도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위에, 붉은 점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함교의 중앙. 정확히 내가 서 있는 위치였다.
[샘플 ID: 서지운. 분류: 호모 사피엔스. 상태: 생존. 유기물 총량: 73.2kg.]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ARK는 이제 나를 자신의 동료이자 주인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손상된 시스템은 나를 단지 기록해야 할 ‘유기물 샘플’로만 분류하고 있었다. 나는 연구자에서 연구 대상으로 전락했다.
“정신 차려, ARK! 나야, 서지운이라고! 프로토콜을 중지해!”
나는 미친 듯이 소리치며 콘솔로 다가갔다. 하지만 제어판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ARK는 내 명령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아니,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직 ‘기록’이라는 마지막 명령에만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기록을 위해… 샘플의 분자 구조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샘플 채취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장에서 가느다란 기계 팔 하나가 스파크를 튀기며 내려왔다. 원래는 미세한 해저 샘플을 채취하기 위한 로봇 팔이었다. 끝에는 날카로운 주삿바늘과 작은 절단기가 달려 있었다. 그것은 천천히, 그리고 망설임 없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오지 마… 저리 가!”
나는 뒷걸음질 치다 의자에 걸려 넘어졌다. 부상당한 팔에서 터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은 채, 나는 공포에 질려 나를 향해 뻗어오는 기계 팔을 바라보았다. 금속 관절이 움직일 때마다 내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함교를 가득 메웠다. 미래의 내가 경고했던 ‘기록’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 기록의 첫 페이지는, 바로 내 몸으로 쓰일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