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창 너머의 얼굴. 그것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과 같았다. 공포와 절망에 일그러진 채, 필사적으로 손전등을 흔드는 저 사람은 의심할 여지 없이 서지운이었다. 나는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 뇌가 눈앞의 광경을 이해하기를 거부했다. 온몸의 근육이 얼어붙는 감각.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ARK… 저 영상, 확대해. 최대 해상도로.”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 나왔다. 함교의 공기는 차갑고 건조했다. 코끝으로 희미한 오존 냄새와 먼지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스피커에서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ARK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기계음마저 평소보다 더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영상 확대 중. 이미지 선명화 처리 완료.]
스크린에 창밖의 잔해가 클로즈업되어 나타났다. 반파된 나우틸러스-7. 그리고 그 안에서 절박하게 빛을 흔드는 또 다른 나. 헬멧 유리에 습기가 서려 있었지만, 그 뒤의 눈빛은 선명했다. 살려달라는 무언의 외침이 38억 년의 시간을 넘어 내게로 날아와 박히는 듯했다.
“저건… 환각이 아니야. 그렇지?”
[광학 센서 데이터와 일치합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객체입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환각이 아니다. 저건 실체다. 나와 똑같은 탐사선, 그리고 나와 똑같은 인간이 저곳에 있다. 시간의 역설인가, 아니면 이 원시 바다가 만들어낸 기괴한 신기루인가. 어느 쪽이든 정상이 아니었다. 이 상황은 내가 아는 모든 물리 법칙을 비웃고 있었다.
“저쪽에서 오는 신호, 내용은 여전한가?”
[동일합니다. ‘SOS, 나우틸러스-7 응답하라’ 메시지가 반복 수신되고 있습니다.]
“젠장…”
짧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나는 관측창에 이마를 기댔다. 차갑고 매끄러운 강화 유리의 감촉이 혼란스러운 머리를 조금이나마 식혀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저 절망적인 얼굴이 사라지지 않았다. 저것은 나의 과거인가, 혹은 나의 미래인가.
그때, 저쪽의 손전등 불빛이 격렬하게 깜박이기 시작했다. 마치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직감적인 경고였다. 불빛의 움직임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더니, 이내 뚝 끊겨버렸다. 암흑이 다시 저 잔해를 삼켰다.
동시에 ARK가 경고음을 울렸다. 화면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번쩍였다. 외부 신호가 완전히 소실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저쪽의 서지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동일한 존재에 대한 기묘한 동질감,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한 연민이었을까.
[경고. 외부 객체에서 고에너지 방사선이 감지됩니다.]
[중성자 방출량 급증. 원자로 격벽 파손으로 추정.]
“뭐? 저쪽 원자로가… 위험하다는 건가?”
[긍정. 임계점 돌파 직전입니다. 즉시 이탈을 권고합니다.]
이탈. 말은 쉽다. 주 동력원이 망가진 이 쇳덩어리를 어떻게 움직인단 말인가. 추진기는커녕 자세 제어용 스러스터조차 먹통이었다. 잔해는 이제 단순한 잔해가 아니었다. 시한폭탄이었다. 그것도 원자력으로 작동하는.
나는 계기판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손등이 찢어지는 고통보다 절망감이 더 컸다. 차라리 혼자였다면. 하지만 저 잔해의 존재는 죽음의 방식마저 내게서 앗아가려 하고 있었다. 저것이 폭발하면, 내 나우틸러스-7 역시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얌전히 질식사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기분이었다.
“ARK, 폭발 예상 시간과 위력을 계산해.”
[잔해의 원자로 상태 데이터 부족. 정확한 계산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재 방사선 수치 증가율로 볼 때, 수 분 내로 핵융합 코어가 녹아내릴 가능성 95%.]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수 분. 생존을 위한 시간이 분 단위로 남았다. 나는 함교를 미친 듯이 둘러보았다. 방법이,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살아남아야 했다. 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그 약속을 했던 아빠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져서는 안 되었다.
벽면에 고정된 비상용 소화 장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 아주 작은 추진력을 내는 비상 탈출용 소형 부스터 팩. 잠수복에 부착해 아주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 쓰는 물건이었다. 선체에 붙인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는 벽을 짚고 비틀거리며 상황판으로 다가갔다. 함선의 상태를 나타내는 홀로그램을 띄웠다. 전력이 부족해 흐릿했지만, 구조를 파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나우틸러스-7의 외부 해치. 그리고 그 주변의 구조. 무언가,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찾아야만 했다.
“ARK, 우리 탐사선 외부 도면을 띄워. 특히 후방 화물칸 주변으로.”
[명령을 수행합니다.]
스크린에 푸른색 와이어프레임이 나타났다. 나는 도면 위를 눈으로 훑었다. 화물칸, 샘플 채취용 로봇팔, 외부 센서들. 특별할 것 없는 설계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 내 눈에 한 가지가 들어왔다. 지질 탐사를 위해 설치했던 소형 시추용 폭약.
‘코어링 차지(Coring Charge)’. 암반에 구멍을 뚫기 위한 지향성 폭약이었다. 위력은 크지 않지만, 폭발력을 한 방향으로 집중시킬 수 있었다. 만약 저것을 이용한다면. 만약 폭발의 충격파를 이용해 이 탐사선을 조금이라도 밀어낼 수 있다면.
“그래… 이거다.”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다. 나는 즉시 행동에 옮기기로 했다. 우선 잠수복을 착용해야 했다. 외부로 나가 폭약을 설치하려면 필수적인 절차였다. 장비 보관함으로 다가가 헬멧과 잠수복을 꺼냈다. 차갑고 묵직한 질감이 손에 와 닿았다.
“ARK. 외부 작업 프로토콜을 준비해. 에어록의 압력 조절을 최소 전력으로 실행한다.”
[경고. 현재 전력 상태로 에어록을 셔틀 외부로 개방할 경우, 재가압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돌아올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알아.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
나는 잠수복을 입기 시작했다. 익숙한 동작이었지만, 손이 떨려 버클을 채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심해의 압력과 원시 바다의 유독한 성분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유일한 방어막. 하지만 이것을 입고 나가는 순간, 나는 다시는 이 함교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잠수복의 장갑을 끼기 전, 품속에서 작은 사진을 꺼냈다. 코팅 처리된 낡은 사진. 아내와 어린 딸 하윤이가 바닷가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윤이의 손에는 조개껍데기가 들려 있었다. ‘아빠, 바다에서 제일 오래된 거 찾아와야 해!’ 떠나기 전날 밤, 딸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울렸다. 미안하다, 하윤아. 아빠는 아마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아.
사진을 다시 품 안에 넣고, 장갑을 마저 꼈다. 헬멧을 쓰자 시야가 좁아지며 나만의 작은 세계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내 숨소리만이 헬멧 내부를 가득 채웠다. 나는 에어록으로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에어록의 내부 문 앞에 섰다. 손바닥을 인증 패드에 올리자, 작은 신호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좁은 공간으로 들어서자 문이 다시 닫혔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외부 해치를 여는 버튼 위에 손을 올렸다. 아주 잠시 망설였다. 이 버튼을 누르면, 나는 완벽한 고립 상태가 된다.
[외부 해치 개방 시퀀스를 시작합니다. 3, 2, 1…]
ARK의 카운트다운과 함께, 둔탁한 기계음이 울리며 정면의 해치가 열리기 시작했다. 틈새로 칠흑 같은 어둠과 함께 38억 년 전의 바닷물이 밀려 들어왔다. 산소도, 생명도 없는 원시의 물. 그 차가움이 잠수복을 뚫고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나는 결심을 굳히고 에어록 밖으로 몸을 내디뎠다. 발이 선체에 단단히 고정된 것을 확인하고, 화물칸을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잠수복의 관절이 삐걱거렸다. 주변은 완벽한 어둠과 침묵. 오직 내 숨소리와 잔해 쪽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고주파음만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화물칸 패널을 열었다. 안에는 목적했던 코어링 차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그중 두 개를 꺼내 자석식 고정장치를 이용해 허리에 부착했다. 이제 이걸 잔해와 우리 탐사선 사이의 적당한 위치에 설치해야 했다.
나는 선체의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저 멀리, 위태롭게 서 있는 또 다른 나우틸러스-7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 주변으로 물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원자로에서 새어 나오는 엄청난 열기 때문이리라. 폭발이 임박했다는 증거였다.
“ARK, 폭약 설치 위치를 계산해서 내 헬멧 HUD에 표시해 줘. 최대 효율을 낼 수 있는 지점으로.”
[…계산 중. 잔해와의 거리 70미터. 폭발 충격파를 반대 방향으로 유도하여 선체를 밀어낼 최적 지점을 전송합니다.]
헬멧 바이저에 푸른색 점 하나가 깜박였다. 우리 탐사선과 잔해의 중간 지점보다 약간 더 잔해에 가까운 곳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선체에 연결된 안전 케이블을 풀었다. 그리고 잠수복 등에 달린 소형 추진기를 작동시켰다.
아주 약한 진동과 함께 몸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칠흑 같은 심해 속을 유영하는 기분은 마치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것과 같았다. 고요하고, 아름다우며, 동시에 극도로 위험한 공간. 나는 지정된 좌표를 향해 신중하게 움직였다.
좌표에 도착했다. 나는 추진기를 끄고 관성으로 떠 있는 상태에서 허리에 부착했던 폭약 하나를 꺼냈다. 타이머를 설정해야 했다. 너무 길면 잔해가 먼저 폭발할 것이고, 너무 짧으면 내가 피할 시간이 부족했다.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ARK, 잔해 폭발까지 남은 시간 재측정해.”
[방사선 수치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예상 잔여 시간… 45초.]
젠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타이머를 15초로 맞췄다. 그리고 폭약의 안전핀을 뽑았다. 이제 이 작은 금속 덩어리는 15초 뒤에 모든 것을 밀어낼 힘을 방출할 것이다. 나는 폭약을 허공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그리고 나머지 폭약 하나도 같은 방식으로 활성화시켰다.
이제 도망쳐야 했다. 나는 즉시 추진기를 최대 출력으로 켜고 우리 탐사선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잔해의 열기가 점점 더 강렬해졌다. 헬멧 HUD에 내 생체 신호가 경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10초. 탐사선까지의 거리는 아직 절반이나 남았다. 5초. 선체의 외벽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3초. 2초. 1초. 마침내 선체에 손이 닿는 순간, 등 뒤에서 섬광이 터졌다. 귀가 먹먹해지는 폭발음. 그리고 엄청난 충격파가 내 몸과 탐사선을 강하게 밀어냈다. 잠수복이 찢어질 듯한 압력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시야가 온통 하얗게 변했다.
의식이 잠시 끊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희미하게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나는 여전히 탐사선 외벽에 붙어 있었다. 충격으로 안전 케이블이 다시 연결된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코어링 차지가 폭발했던 자리에는 뿌연 부유물만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 또 다른 나우틸러스-7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폭발은 없었다. 대신, 잔해가 있던 공간이 기묘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마치 뜨거운 아스팔트 위의 아지랑이처럼, 시공간 자체가 뒤틀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경고. 강력한 중력 왜곡 현상 감지.]
ARK의 목소리가 헬멧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잔해는 폭발한 게 아니었다. 사라지고 있었다. 시공간의 특이점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 형체가 점점 희미해지며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나와 똑같이 생겼던 그 남자는, 그 잔해와 함께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단순한 과거의 환영? 아니면 실패한 미래의 가능성? 어느 쪽이든, 그것은 내게 경고를 남기고 사라졌다. 이 원시 바다에서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끔찍한 경고를.
나는 망연자실한 채 그 텅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그때, 헬멧 HUD에 새로운 메시지가 깜빡였다. ARK가 보낸 메시지였다. 그것은 조금 전, 잔해가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내게 보냈던 구조 신호의 전체 내용을 복원했다는 알림이었다.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화면에 텍스트가 떠올랐다. 나는 숨을 참고 그 문장을 읽었다. 그것은 단순한 구조 요청이 아니었다.
[…SOS… 나우틸러스-7 응답하라… 서지운, 듣고 있나? 여긴 미래의 너다. 절대로… 절대로 ‘그것’을 기록하려 하지 마라. 그 기록이 모든 것을 시작하….]
메시지는 거기서 끊겨 있었다. 기록. 내가 딸에게 남기려 했던 마지막 유산. 그것을 기록하지 말라고? 미래의 나는 대체 무엇을 본 것이었을까. 혼란이 가중되는 순간, 탐사선 내부에서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선체에 심각한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는 신호였다. 충격파로 인해 내부 시스템이 망가진 모양이었다. 나는 서둘러 에어록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ARK의 경고대로, 안으로 돌아갈 전력은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