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비상등이 함교의 모든 것을 피로 물들이고 있었다. 금속이 찢어지는 비명, 폭발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몸이 조종석에 처박히는 둔탁한 충격. 서지운은 바닥에 쓰러진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폐 속까지 파고드는 매캐한 연기가 기침을 터뜨리게 했다. 머리에서는 뜨거운 액체가 흘러 관자놀이를 적셨다.
“ARK… 상태 보고.”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쇳소리가 섞인 갈라진 음성이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갈비뼈 몇 개가 부러진 듯, 숨을 쉴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이 온몸을 찔렀다. 조종간은 부러져 있었고, 정면의 강화 관측창에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득했다. 그 너머는 오직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대답이 없었다. 함교를 관장하는 인공지능 ARK는 침묵했다. 대신 지직거리는 스파크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케이블 몇 가닥이 불꽃을 튀기며 떨어져 내렸다. 고무 타는 냄새와 오존 냄새가 비릿한 피 냄새에 섞여 코를 찔렀다. 지운은 비틀거리며 보조 모니터로 다가갔다.
“ARK, 응답해!”
몇 번의 터치에도 화면은 검은색 그대로였다. 전원이 완전히 나간 것 같았다. 탐사선 나우틸러스-7의 심장이 멎어버렸다. 지운은 이마를 짚었다. 손바닥에 끈적한 감촉이 묻어 나왔다. 눈앞이 잠시 아찔하게 흔들렸다. 심해 열수분출공을 탐사하던 중이었다. 분명 그랬다. 갑작스러운 해저 지반 붕괴에 휘말렸을 뿐인데.
그때, 치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메인 스크린이 희미하게 켜졌다. 노이즈가 가득한 화면에 깨진 글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단어가 하나 만들어졌다.
[…재…부…팅…]
숨을 죽였다. 아직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운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스크린의 깜박임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탐사선 외부를 감싸는 물의 압력이 선체를 삐걱거리게 만들었다. 이곳은 수심 몇 미터일까. 아니, 질문이 잘못되었다.
나는 아직 살아있는가.
함교의 비상등마저 깜박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일정한 간격으로 어둠이 찾아왔다. 붉은빛과 암흑이 교차할 때마다 지운의 얼굴에 드리운 절망의 그림자도 짙어졌다 옅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는 주 동력원을 확인하기 위해 엔지니어링 패널을 열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원자력 전지는 손상률 78%. 거의 폐기 수준이었다. 보조 배터리만으로 겨우 생명 유지 장치와 ARK의 재부팅 시퀀스를 돌리고 있었다. 이마저도 길어야 서너 시간이 한계일 터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패널을 닫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끝을 시리게 했다.
“통신… 통신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통신 콘솔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모든 것이 먹통이었다. 장거리 음파 통신 장비는 물론, 위성을 향한 비상 송신기까지 박살 나 있었다. 구조 신호를 보낼 방법이 없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아니, 심해 한복판에서 완벽한 미아가 된 것이다.
외부 상황이라도 알아야 했다. 지운은 외부 카메라를 작동시키려 애썼다. 전력 부족 때문인지 메인 화면에는 연결할 수 없다는 경고 메시지만 떴다. 그는 보조 전력을 카메라 쪽으로 돌리는 스위치를 내렸다. 잠시 함교의 모든 불이 꺼졌다가, 희미한 비상등과 함께 메인 스크린이 마침내 외부 영상을 비췄다.
화면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심해의 어둠, 익숙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평소라면 보였을 미세한 발광 플랑크톤이나 심해어의 흔적조차 없었다. 완전한 무(無)의 공간. 라이트를 켜보려 했지만, 외부 조명 장치도 파손된 모양이었다.
“수심은… 수압계는 작동하나?”
지운은 계기판을 살폈다. 다행히 수압계는 살아있었다. 하지만 숫자를 확인한 순간, 그의 숨이 멎었다. 이해할 수 없는 수치였다. 현재 위치의 수심을 나타내는 숫자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정보가 떠 있었다.
[시공간 좌표 변이율: 99.8%]
[시간 왜곡 추정치: 오차 범위 초과]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시간 왜곡. 그것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던 개념이었다. 지반 붕괴의 충격으로 웜홀이라도 통과했다는 말인가. 비과학적인 망상이라 치부하기엔, 눈앞의 현실이 너무나도 기괴했다.
[…재부팅 완료. 시스템 진단 시작.]
기계적인 음성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노이즈가 심하게 섞여 있었지만, 분명 ARK의 목소리였다. 지운은 스크린 앞으로 다가섰다. 화면에는 수많은 에러 코드와 경고 메시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ARK! 현재 위치를 분석해 줘. 좌표를 알려줘.”
[…연산 능력 17% 손상. 메모리 뱅크 45% 파손. 음성 합성 모듈 불안정.]
“알았으니까 위치부터!”
지운이 소리쳤다. ARK는 잠시 침묵했다. 기계가 연산을 위해 쿨링팬을 돌리는 낮은 소음만이 함교를 채웠다. 주변의 바다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파도 소리는커녕, 미세한 생물의 움직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선체를 누르는 수압만이 유일한 외부의 존재감이었다.
[…항성 스펙트럼, 대기 구성, 해수 성분 데이터 분석 중…]
[…기존 데이터베이스와 일치하는 정보 없음.]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긴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 근처잖아.”
[…부정. 대기 중 산소 농도 0.01% 미만. 이산화탄소 및 메탄이 주성분.]
[해수 샘플 분석 결과, 유기 화합물 미검출. 염도 현재 지구 평균의 1.5배.]
지운은 제 귀를 의심했다. 산소가 없는 대기. 유기물이 없는 바다. 이것은 현대 지구의 모습이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머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그는 다시 물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ARK… 지금이… 언젠지 알려줘. 시간 좌표를 분석해.”
화면에 복잡한 계산식과 그래프가 스쳐 지나갔다. 지운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모든 감각이 모니터에 집중되었다. 마침내, ARK가 최종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그 목소리는 어떤 감정도 없이, 잔인한 사실을 고했다.
[시공간 좌표 특정 완료. 현재 시간은… 지구 표준시 기준, 약 38억 년 전입니다.]
[위치는 명왕누대 말기, 원시 해양으로 추정됩니다.]
지운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38억 년 전. 생명이 막 태동하려던 시절의 원시 바다. 머릿속이 텅 비었다. 사고를 거부하는 뇌가 비명을 질렀다.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거친 숨소리가 함교의 정적을 깨뜨렸다.
“거짓말… 이건 오류야. 시스템 손상으로 인한 계산 착오일 뿐이야.”
[재계산 결과 동일합니다, 서지운 박사님.]
ARK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감정했다. 지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언가 해야 했다. 이 상황을 부정할 증거를, 혹은 되돌아갈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는 비상 장비 보관함을 열었다. 손이 급하게 내부를 뒤졌다. 비상 식량, 증류수 팩, 조명탄, 소형 산소통. 모두 단기 조난 상황을 가정한 물품들이었다.
“외부 탐사… 외부로 나가서 샘플을 직접 채취해야겠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믿을 수 없어.”
그는 소형 탐사 드론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드론 베이는 충격으로 찌그러져 문이 열리지 않았다. 힘으로 열어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욕설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비상용 절단기를 발견했다.
절단기를 손에 쥐었다. 묵직한 무게가 현실감을 더했다. 그는 드론 베이의 잠금장치에 절단기의 날을 가져다 댔다. 스위치를 올리자, 귀를 찢는 소음과 함께 푸른 플라스마 불꽃이 튀었다.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금속 타는 냄새가 함교에 퍼졌다.
[경고. 과도한 전력 사용은 생명 유지 장치 가동 시간을 단축시킵니다.]
“닥쳐, ARK!”
지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절단에 집중했다. 굳게 닫힌 문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팔이 저려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 끔찍한 진실 혹은 오류를 제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마침내 잠금장치가 파괴되고, 그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을 열어젖혔다.
안에는 주먹만 한 탐사 드론, ‘프로브-1’이 온전히 들어 있었다. 지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드론을 꺼냈다. 하지만 드론을 작동시키기 위해 전원 케이블을 연결한 순간, 함교의 모든 불빛이 꺼졌다. 비상등마저. 완벽한 암흑이 찾아왔다.
정적이 흘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 심장 소리와 거친 숨소리만이 귓가를 때렸다. 지운은 손을 더듬어 벽을 짚었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희미한 예비 전력이 들어오며, 메인 스크린 하나가 겨우 켜졌다.
화면에는 ARK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
[비상 전력 임계점 도달. 생명 유지 장치를 제외한 모든 시스템을 종료합니다.]
[예상 가동 시간: 1시간 47분.]
절망이 목을 졸랐다. 드론을 꺼내기 위해 마지막 남은 예비 전력마저 소모해버린 것이다. 시도 자체가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어둠 속에서 웃음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이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스크린의 메시지가 바뀌었다. 지운은 눈을 가늘게 떴다.
[미확인 외부 신호 감지.]
[주파수 패턴 분석… 지적 생명체의 구조 신호와 유사성 87%.]
지운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38억 년 전 원시 바다에, 지적 생명체라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홀린 듯 스크린으로 다가갔다. ARK가 신호의 발신 방향을 화면에 표시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ARK… 그게… 가능해? 이 시대에?”
[데이터 부족으로 판단 불가. 하지만 신호는 명백히 인공적인 패턴을 보입니다.]
새로운 가능성. 혹은 더 깊은 절망. 지운은 혼란스러웠다. 우리 말고 다른 조난자가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ARK의 시스템 오류가 만들어낸 환상일까. 하지만 만약, 만약 사실이라면.
“수신된 내용을… 재생할 수 있나?”
[신호 강도가 미약하여 음성 데이터 복원은 불가능합니다. 텍스트 데이터 일부를 복원합니다.]
잠시 후, 화면에 깨진 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지직거리는 노이즈 사이로,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단어들이 조합되었다. 지운은 숨을 참고 그 메시지를 읽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이해한 순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SOS… 나우틸러스-7 응답하라… 반복한다, 여기는 나우틸러스-7…]
“뭐라고…?”
지운의 입에서 나온 것은 질문이 아닌, 터져 나온 신음에 가까웠다. 화면에 떠 있는 글자는 분명했다. ‘나우틸러스-7’. 바로 이 탐사선의 이름이었다. 자신의 구조 신호를 자신이 수신하고 있다는 말인가. 시간의 역설? 아니면 완전히 다른 가능성?
“ARK! 저 신호의 정확한 발신지를 추적해! 당장!”
[전력 부족으로 정밀 추적이 어렵습니다. 대략적인 방향만 특정 가능.]
화면에 표시된 방향은 탐사선의 후미 쪽이었다. 지운은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함교의 작은 후방 관측창으로 다가갔다.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그는 창 옆에 붙어있는 소형 조명 스위치를 올렸다. 아주 잠깐, 한 2~3초 정도만 켤 수 있는 비상용이었다.
스위치를 누르자, 창밖으로 한 줄기 빛이 쏘아져 나갔다. 빛은 심해의 어둠을 갈랐다. 그리고 그 빛의 끝에, 무언가가 있었다. 지운은 눈을 비볐다. 잘못 본 것이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선명했다.
익숙한 유선형의 동체. 그리고 선명하게 새겨진 글자. ‘Nautilus-7’.
자신이 타고 있는 것과 똑같은 탐사선이, 불과 수십 미터 떨어진 해저에 처박혀 있었다. 충격으로 선체가 반파된 채, 죽은 고래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저쪽에서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말인가?
“ARK… 저건… 저게 어떻게 된 거야?”
[분석 불가. 동일한 개체가 동일한 시공간에 두 개 이상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물리 법칙에 위배됩니다.]
ARK의 목소리마저 혼란스러워 보였다. 지운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했다. 저것이 과거의 나인가? 혹은 미래의 나인가? 아니면 평행 세계의 또 다른 나인가? 어느 쪽이든 희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저 잔해는 곧 닥쳐올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묘비처럼 느껴졌다.
그때, 저쪽 탐사선의 깨진 관측창 안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희미한 빛이 깜박였다. 사람이었다. 헬멧을 쓴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전등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헬멧 너머로, 지운은 보았다. 공포와 절망에 질린,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을.
그것은 바로 서지운, 자기 자신이었다.